마닐라에 산 지 벌써 3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카지노를 가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쫄보다.

괜히 가서 돈만 잔뜩 쓰고 오는 거 아닐까 싶었고,
잘못하면 쫓겨나는 거 아닌가 하는 괜한 상상도 했다.
카지노는 뭔가 부자들이 가는 곳 같고, 나는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달까.

그런데 마침 한국에서 친구 예진이가 놀러 왔다.
"마닐라 왔는데 카지노는 가봐야지!" 하는 말에
묘하게 용기가 나서 결국 가보기로 결심했다.

마닐라 카지노 중에서는 ‘오카다’가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그랩을 타고 오카다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택시 기사님이 한국 노래를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셨는데,
우릴 위해 라이브 K-팝 콘서트를 열어주심... 진심으로 귀여우셨다.
그때부터 뭔가 좋은 기운이 감돌았달까.

오카다 호텔 앞에 도착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어떤 현지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혹시 한국 셀럽이세요?”라고 물으시더니
같이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시는 거다.
너무 당황해서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했지만,
자기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다며 계속 부탁하셔서 결국 찰칵.
갑작스레 오카다 호텔 앞에서 팬미팅을 열어버렸다.

카지노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서로 약속했다.
“절대 2000페소 이상은 쓰지 말자.”
이게 진짜 중요하다. 안 그러면 시간도 돈도 훅훅 사라진다.
왜 사람들이 카지노에 빠지는지 단 10분만 있어도 이해된다.

게임을 뭘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돌아다니던 직원분에게 초보자가 하기 쉬운 게임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룰렛 머신을 추천해주셨다.
소액으로도 베팅할 수 있고, 룰도 단순해서 좋다고.

그렇게 룰렛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게임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 2000페소를 가지고 시작해서 결국 4000페소를 만들었다.
무려 2배 수익.

기계 옆에 있는 ‘캐쉬 아웃’ 버튼을 누르면 카드 같은 게 나오는데,
그걸 들고 캐셔 데스크에 가면 현금으로 바꿔준다.
근데 우리 둘 다 워낙 쫄보라,
조금만 벌면 바로 중지하고 돈 바꾸러 감.
1000페소만 벌어도 “이 정도면 됐지 뭐~” 하면서 종료.
그래서 총 4번이나 캐셔를 들락날락했는데,
나중엔 캐셔 언니가 우릴 보고 웃더라. 민망하긴 했지만 귀여운 기억이다.

이튿날, 보홀 가는 비행기 타기 전 시간 여유가 좀 생겨서
욕심이 슬쩍 올라왔다.
“어제 잘 됐으니까 한 판만 더?”

그래서 이번엔 **시티 오브 드림즈(COD)**에 가봤다.
너무 급하게 들러서 사진은 하나도 못 찍었고,
들어가자마자 게임만 잔뜩 했다.

오카다에서 했던 거랑 똑같은 룰렛 게임기를 찾아서
둘이 700페소씩, 총 1400페소를 베팅했는데…

이번엔 한 푼도 못 벌었다.

진짜 0페소.
운이란 게 참 한순간이다.
어제는 팬미팅까지 했더니 잘 풀렸나? ㅋㅋ

결국 두 군데 다녀온 카지노 수익을 계산해보면,
오카다에서는 2000페소 벌었고,
COD에서는 1400페소를 잃었다.
총 수익은 +600페소.

물론 그랩 타고 다닌 택시비를 합치면… 손해긴 하다.
그래도 우리는 이걸 ‘경험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노래방 가서 노는 것처럼, 카지노도 그냥 놀이의 일종.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두면 너무 아깝고,
재밌는 추억 만들기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다.

전체적으로 비교해보면,
오카다가 시설도 훨씬 좋고 분위기도 밝고 럭셔리한 느낌이었다.
COD는 조금 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깔끔하긴 한데,
확실히 오카다가 ‘와~ 여긴 카지노다!’ 싶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두 군데 모두 실내 흡연이 가능해서
담배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살짝 힘들 수도 있다.
피시방 흡연 구역 근처에 앉아 있는 느낌 정도라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겁나서 못 갔던 카지노.
막상 가보니까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조심성만 있으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쫄보의 첫 카지노 체험,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

중독의 시작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