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10만원에 몸싸움

“요새 정말 일이 없습니다. 여기에 나오기 시작한 지 9년 정도 됐는데 올해처럼 일이 없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지난달 30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 오전 3시 40분쯤부터 모여든 일용직 근로자들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인력 시장은 보통 새벽 4시부터 시작하지만 혹시 먼저 나온 일감을 놓칠까 봐 조금이라도 일찍 나온 사람들이다.
목수 일을 구하러 왔다는 중국 동포 김모(54·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수요일인 이날까지 이번 주엔 한 번도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방세, 가스비, 전기세 등 내야 할 돈은 많은데 일을 못 나가니 정말 힘들다”고 했다.
◇ “일당 10만원까지 떨어졌는데...한 달에 열흘도 일 못해”
근로자들은 최근 일감이 대거 줄면서 일당은 떨어졌지만 일자리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66·서울 구로구)씨는 “예전엔 목수 일당이 18만~20만원이었는데 요즘엔 일은 없고 일할 사람은 많으니 15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최씨는 “한 달에 열흘도 일을 못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20년 넘게 건설 일을 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서로 일 나가겠다고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까지 벌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실제 지난달 17일 새벽엔 승합차에 타려는 한 남성의 가방끈을 다른 남성이 붙잡고 놔주지 않으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최씨는 “내가 15만원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뒤에 온 사람이 10만원에 나가겠다면서 일을 뺏으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며 “한 달에 20일씩 일을 나갈 때는 싸울 필요가 없었는데 요새 너무 힘드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 “일 구하러 한국 왔던 중국인들도 일 없어 돌아간다”
팍팍해진 일자리 상황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 특히 불법 체류자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서울 가리봉동에 사는 박모(55)씨는 “차라리 코로나 때가 좋았다. 그때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거의 못 들어오니까 지금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불법 체류자들이 워낙 싸게 받고 일을 나가니 합법적인 근로자들이 오히려 일을 못 구한다. 불법 아닌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중국 동포 김씨도 “불법 체류자들은 훨씬 적은 돈을 받고 일감을 다 가져간다”며 “같은 중국인이라도 우리는 (비자가 있는) 합법이라 세금도 다 내는데 그 사람들은 세금도 안 낸다”고 했다.
퇴직 후 4년 전부터 잡부 일을 해온 김모(62·서울 구로 4동)씨는 “요즘엔 일당이 10만원까지 떨어졌는데도 이번 주엔 일을 한 번도 못 나갔다”고 했다. 그는 “요즘 얼마나 일이 없으면 일하러 한국에 왔던 중국인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며 “내가 아는 중국인 2명도 최근 귀국했다”고 했다.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작년에 하루 약 1000명 일을 보냈다면 올해는 400명 정도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여기서는 주로 아파트 건설 현장에 보내는데 요즘엔 아파트 미분양마저 늘어 일감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